건설 현장의 낡은 하도급 규제가 방화문·방화셔터 등 건축 안전 설비 시공 업계에도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호일 부연구위원은 2026년 8월 7일 대한전문건설신문 기고를 통해 현행 건설산업기본법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전문건설 현장의 실제 작동 방식과 심각하게 괴리돼 있다고 지적했다.

완제품 자재 설치, 전문건설공사로 인정 못 받아

대한전문건설신문에 따르면, 문·난간·배관 등 완제품 자재를 납품받으면서 단순 구매 계약에 현장 설치 시공까지 부속 서비스로 포함하는 관행이 건설 시장 전반에 만연해 있다. 이는 엄연한 전문건설공사 행위임에도 보조적 서비스로 치부돼 설치 대가가 미반영되거나 누락되기 일쑤다. 방화문·방화셔터 역시 이 범주에 정확히 해당한다. 제조사 또는 유통업체가 제품을 납품하면서 현장 설치까지 일괄 처리하는 방식이 업계 관행으로 굳어져 있지만, 법적으로는 전문건설공사 수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적 공백이 존재한다.

이 부연구위원은 이러한 관행이 전문건설업체의 정당한 수주 기회를 박탈하고 전체 건설시장의 적정 단가 체계를 무너뜨리는 주요인이라고 명시했다. 방화·셔터 업계 입장에서는 설치 노무 비용이 계약 단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수익성이 악화되고, 장기적으로는 숙련 시공 인력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재하도급 금지 원칙, 현장 현실과 충돌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건설 생산체계는 ‘발주자-원도급자-1차 하도급자’로 이어지는 단층적 수주구조와 엄격한 재하도급 금지 원칙을 근간으로 한다. 정부는 2007년 시공참여자 제도를 공식 폐지하면서 이 원칙을 확립했다. 1차 하도급을 받은 전문건설업체가 인력·장비·자재 등 3대 생산 요소를 직접 보유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치열한 수주 환경과 불확실한 공사 물량 속에서 중소 전문건설업체가 세 요소를 완벽히 자체 보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현장에서는 1~2개 요소만 자체 보유하고 나머지는 외부 아웃소싱으로 조달하는 방식이 보편화돼 있다. 굴착기·크레인·덤프트럭 등 장비의 경우 1인 개인 사업자(지입차주)가 장비와 조종 노무를 함께 제공하는 형태가 일반적인데, 임대차계약 시 장비 임대와 노무 제공의 경계가 법적으로 모호해 단속 과정에서 불법 재하도급으로 적발되는 구조적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 연구위원은 미국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이 현장 노무 수반 여부를 기준으로 거래 형태의 법적 지위를 엄격히 구분한다는 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국은 연방대법원의 ‘매커보이(MacEvoy) 판례’를 통해 단순 자재 및 장비 납품자를 시공 하도급자가 아닌 ‘자재공급자’로 명확히 규정했다. 영국 역시 ‘주택보조금, 건설 및 재생법(HGCRA 1996)’을 통해 현장에서의 노무 수반 여부에 따라 법적 지위를 달리 적용한다.

방화·셔터 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단순한 단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방화구획 설비는 건축법 제49조 및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일정 면적 이상 건축물에 의무 설치되며, 내화 성능 기준을 충족하는 전문 시공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행 하도급 규제 구조 아래에서는 방화문·방화셔터 설치 전문업체가 정식 하도급 계약 없이 납품 부속 서비스 형태로 시공에 투입되는 사례가 반복된다. 이는 시공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화재 발생 시 안전 사고 대응 체계에도 허점을 남길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방화문·방화셔터 설치를 명확히 전문건설공사로 분류하고, 납품과 시공을 계약상 분리해 적정 단가를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규제가 정상화되지 않는 한, 안전 설비 시공의 질적 저하와 책임 공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출처: 대한전문건설신문, 셔터뉴스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