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단 · 방재
하루 638.7㎜ ‘물폭탄’… 거제 지하주차장이 통째로 잠겼다
지난 8월 17일, 경상남도 거제에는 하루에만 638.7㎜의 비가 쏟아졌다. 1972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이 지역 일 강수량 최고치다.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이어진 남부지방 극한호우로 거제와 통영 일대의 주택·상가·도로가 물에 잠겼고, 정부는 8월 21일 거제시 전역과 통영시 산양읍·봉평동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했다.
피해가 가장 참혹했던 곳은 지하였다. 거제 고현동의 한 상가건물에서는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차량들이 흙탕물에 뒤엉킨 채 떠올랐고, 119구조대는 지하 4층까지 내려가 손도끼로 차량 유리를 깨며 인명수색을 벌였다. 장승포동 상가 지하주차장에서는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가 대용량포방사시스템까지 투입해 물을 퍼냈다. 물이 빠진 뒤에야 시작되는 ‘사후 배수’로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대형 소방차도 못 들어가는 지하… 수동 물막이판의 한계
지하공간은 재난에 가장 취약하다. 층고가 낮아 대형 소방차나 배수 장비의 진입이 어렵고, 물은 중력을 타고 순식간에 최하층까지 밀려든다. 그런데도 상당수 상가와 건물이 침수 대비책으로 갖춘 것은 사람이 직접 들어 끼우는 수동식 물막이판이 전부다. 판 하나 무게가 30~40㎏에 달해 성인 남성도 혼자 설치하기 버겁고, 야간이나 업주가 자리를 비운 시간, 고령자·여성만 근무하는 상황에서는 손쓸 방법이 없다. 기습 폭우는 대개 이런 ‘무방비 시간대’를 노린다.
평소엔 셔터, 폭우엔 차수벽… ‘리모컨 자동하강’의 발상 전환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차수판 복합방화셔터’다. 건물 출입구마다 이미 달려 있는 방화셔터·방범셔터 하부에 차수판(가로 3m·높이 60cm)을 결합하고 좌우 가이드레일에 수밀장치를 더한 구조로, 평상시에는 일반 셔터로 쓰다가 폭우 시 셔터를 내리면 하단 60cm 구간이 물을 가두는 차수벽으로 바뀐다. 국토교통부 인정 방화셔터 전문기업 미성기업이 개발해 특허 등록을 마쳤다.
핵심은 ‘자동’이다. 30~40㎏짜리 판을 사람이 들어 끼우던 방식과 달리,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전동으로 차수판이 자동 하강해 성인 허리 높이까지 차오르는 물살을 막는다. 실제로 지난해 폭우로 사무실이 침수됐던 한 시골 우체국에는 올여름 이 전자동 차수막이 설치돼, 고령자나 여성 직원만 근무하는 상황에서도 기습 폭우에 즉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 차수판 복합방화셔터의 침수 차단 원리 — 하단 60cm 차수판이 폭우 유입수를 막아 지하상가·지하주차장 침수를 원천 차단한다 (자료: 미성기업 / ShutterNews)
수밀 최고 50등급·특허 등록… 이미 검증된 기술
이 기술은 실험실 단계를 넘어섰다. 차수판 복합방화셔터 시제품은 2023년 8월 건설화재에너지연구원 수밀성 시험에서 최고등급인 50등급을 획득했고, ‘차수막 복합방화셔터’ 특허는 2025년 4월 등록을 마쳤다. 초기에는 통판형 차수판이 셔터박스에 말려 올라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지만, 여러 단으로 접히는 폴딩(접이식) 힌지 구조로 이를 해결해 방화셔터뿐 아니라 도심 상가의 방범셔터에도 범용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됐다. 미성기업은 올해 경기테크노파크 기술닥터 상용화지원 과제에 선정돼 내화·차연·수밀 시험성적서 확보와 현장 실증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불과 물 동시 대응…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까지
차수판 복합방화셔터의 확장성은 침수에 그치지 않는다. 화재 감지 시 셔터가 차수판과 함께 내려와 하단 60cm를 밀폐하면 그 자체가 ‘수조’가 되고, 여기에 습식 스프링클러가 물을 채우면 전기차 배터리가 물에 잠겨 열폭주를 억제한다. 화재 감지 → 셔터 자동하강 → 하부 60cm 수밀 → 스프링클러 급수 → 배터리 잠식 소화로 이어지는 5단계 원리다. 정부가 2025년 모든 지하주차장에 습식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한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대형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지하주차장에서, 하나의 셔터가 전기차 화재와 폭우 침수라는 두 재난을 동시에 방어하는 셈이다.

▲ 차수판 복합방화셔터 핵심 작동원리 — 화재 감지부터 배터리 잠식 소화까지 5단계 (자료: 미성기업)
침수는 매년 반복된다… ‘사후 배수’에서 ‘사전 차단’으로, 지하 방재 패러다임 바꿀 때
거제의 638.7㎜는 이례적 기록이었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이례적’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매년 여름 어딘가의 지하주차장과 지하상가가 물에 잠기고, 그때마다 대응은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가 퍼내는 ‘사후 배수’에 머물러 왔다. 차수판 복합방화셔터의 의미는 이 순서를 뒤집는 데 있다. 물이 들어온 뒤 퍼내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기 전에 자동으로 막는 ‘사전 차단’으로의 전환이다.
관건은 제도화다. 아무리 성능이 검증돼도 설치를 강제하거나 지원할 근거가 없으면 현장 보급은 더디다. 지하주차장 스프링클러 의무화, 전기차 주차구역 안전기준 등 관련 제도가 움직이는 지금이야말로, 침수 취약 지하공간에 대한 차수 설비 기준을 함께 논의할 적기다. 셔터가 단순 차단장치를 넘어 화재와 홍수를 동시에 막는 ‘복합재난 방재 인프라’로 자리잡을 수 있느냐. 올여름 거제가 남긴 물의 상흔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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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보도 방화셔터가 ‘수조’로 변신… 전기차 화재·폭우 침수 한 번에 막는 복합셔터, 경기TP 지원으로 현장 실증 돌입 (shutternews.co.kr/s/5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