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못 끄고 물은 못 막고… 셔터가 놓쳐온 두 재난
지하주차장은 층고가 낮아 대형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한다. 결국 화재 진압을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열폭주 특성상 물을 끼얹어도 쉽게 꺼지지 않는다. 방화구획마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서는 한 대의 화재가 2차·3차 연쇄화재로 번질 위험이 상존한다. 정부가 2025년 모든 지하주차장에 습식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종합대책을 확정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지상과 지하상가는 반대로 ‘물’이 문제다. 매년 여름 기록적 폭우가 반복되지만, 상가에 비치된 물막이판은 사람이 직접 들어 끼워야 하는 수동식이다. 야간이나 업주 부재 시에는 손쓸 방법이 없다. 화재를 막는 방화셔터와 침입을 막는 방범셔터는 어디에나 설치돼 있지만, 정작 불과 물이라는 두 재난 앞에서는 무력했다. 하나의 셔터로 두 재난을 동시에 대비할 수 없을까 하는 발상이 복합방화셔터의 출발점이 됐다.
‘차수막 복합방화셔터’ 특허 등록… 수밀 최고등급까지 확보
2019년 설립된 미성기업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방화셔터 품질인정서 4종을 보유한 국토교통부 인정 방화셔터 전문 제조기업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차수막 복합방화셔터는 기존 자동 방화셔터 하부에 차수판(가로 3m·높이 60cm)을 결합하고, 좌우 가이드 레일 연결부에 수밀장치를 더한 구조다. 화재나 침수 시 셔터가 내려오면 하단 60cm 구간이 물을 가둘 수 있는 수조 형태로 바뀐다.
핵심 기술은 이미 지식재산권으로 확보됐다. ‘차수막 복합방화셔터’ 특허(10-2023-0100588)는 2025년 4월 8일 등록을 마쳤고, 시제품은 2023년 8월 건설화재에너지연구원 수밀성 시험에서 최고등급인 50등급을 획득했다. 여기에 전기자동차 셔터장치용 수밀모터, 차수기능이 탑재된 셔터장치, 수밀레일 등 후속 특허 5건을 출원하며 셔터 차수·수밀 분야에 기술을 집중하고 있다.
▲ 미성기업 특허 등록·출원 현황 (자료: 미성기업 사업계획서)
화재 감지하면 셔터가 물을 채운다… 5단계 ‘수조 소화’ 원리
작동 원리는 단순하지만 발상이 다르다. 화재 감지기가 불을 감지하면 방화셔터가 차수판과 함께 자동으로 내려온다. 하단 60cm가 수밀 구조로 밀폐돼 수조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습식 스프링클러가 물을 공급하면 전기차 하부 배터리가 물에 잠긴다. 열폭주의 시작점인 배터리를 물속에 가둬 진화하는 방식으로, 미성기업은 하부 60cm 높이의 수조 효과만으로도 배터리 화재를 잡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차수판 복합방화셔터 핵심 작동원리 (자료: 미성기업 )
차수판이 통판형이라 셔터박스에 말리지 않던 초기 구조의 한계는 폴딩(접이식) 힌지 구조로 풀었다. 하단 차수판이 여러 단으로 접혀 상단 셔터박스 안으로 함께 말려 올라가면서, 방화셔터뿐 아니라 도심 상가의 방범셔터에도 범용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됐다. 평상시에는 일반 셔터로 쓰다가 폭우 시 셔터를 닫으면 차수판이 수평으로 전개돼 물 유입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경기TP 기술닥터 상용화지원 선정… ‘개발·실증’ 2트랙 동시 추진
미성기업은 경기테크노파크가 운영하는 ‘찾아가서 도와주는 기술닥터사업’의 2026년 상용화지원 과제에 선정됐다. 기술닥터사업은 산·학·연·관이 보유한 연구자원을 활용해 중소기업의 현장 애로기술을 1:1로 해결하는 경기도 대표 기업지원 사업으로, 상용화지원 단계에서는 상세설계·시험분석·인증·시장 진입까지 제품화 전 과정을 지원한다.
이번 과제는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한 축은 차수판 복합방화셔터의 성능 고도화로, 내화·차연·수밀 시험성적서 3종을 확보하고 습식 스프링클러·화재경보 시스템과 연동되는 설계와 공사시방서를 만든다. 다른 한 축은 홍수방지용 힌지결합형 폴딩차수판의 현장 실증(PoC)이다. 이렇게 확보한 시험성적서와 시방서를 토대로 조달청 혁신제품 지정과 나라장터 등록을 추진해 공공조달 시장 진입까지 노린다.

▲ 기술닥터 상용화지원 선정 후 개발·실증·조달 진입 로드맵 (자료: 미성기업 )
리모컨 버튼 하나로 홍수 막는다… 침수 피해 우체국서 현장 실증
실증은 이미 현장에서 시작됐다. 미성기업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지난해 폭우로 사무실 내부가 침수돼 컴퓨터와 업무자료가 물에 잠겼던 충남 마산 지역의 한 시골 우체국에 올여름 전자동 차수막이 설치됐다. 판 하나가 30~40㎏에 달해 사람이 직접 들어 끼워야 했던 기존 수동식 물막이판과 달리, 새 설비는 평소 상부에 있다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전동으로 자동 하강해 성인 허리 높이까지 차오르는 물살을 막는다. 고령자나 여성 직원만 근무하는 상황에서도 기습 폭우에 즉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미성기업 측 설명이다.
미성기업은 이번 우체국 설치를 신제품의 실제 작동 성능과 내구성을 검증하는 실증(Testbed)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다. 기업은 현장 데이터를 확보하고 우체국은 침수 대비 설비를 갖추는 상생 모델로, 회사는 이번 설치를 통해 실제 폭우 환경에서의 작동 성능과 내구성 검증을 마쳤다. 기술 자문은 소방안전공학 전문가인 사공성호 교수가 맡았다.
불과 물, 이분법이 끝났다… 셔터가 ‘복합재난 방재 인프라’로
기후위기로 화재와 침수가 같은 계절, 같은 공간에서 번갈아 닥치는 시대다. 그동안 방재 설비는 ‘화재냐 침수냐’로 나뉘어 각각 대응해왔지만, 미성기업의 복합셔터는 이미 건물마다 달려 있는 셔터에 차수판 어댑터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두 재난을 한 장비로 묶었다. 셔터를 통째로 교체할 필요가 없어 비용 부담이 낮고, 방화셔터와 방범셔터 모두에 적용된다는 범용성이 이 모델의 최대 강점이다.
관건은 실증과 제도화다. 지하주차장 습식 스프링클러 의무화, 전기차 주차구역 소방안전 가이드 등 제도가 움직이는 지금, 현장에서 확보한 실증 데이터와 시험성적서가 표준·법제화 논의의 근거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시장 확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조달 혁신제품 등록이라는 공공시장의 문을 넘어서는 순간, 단순 차단장치였던 셔터는 화재와 홍수를 동시에 막는 복합재난 방재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번 경기TP 실증이 그 첫 관문인 셈이다.
자료 출처
미성기업 (2026). 전기차화재 및 홍수방지용 차수판 복합방화셔터 고도화개발 PoC 및 상용화 추진 [2026년 기술닥터 상용화지원 사업계획서].
경기테크노파크 (2025). 찾아가서 도와주는 2026 기술닥터사업 안내자료.
▶ 관련 영상 리모컨 버튼 하나로 홍수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