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 조사는 현행 법령 준수 여부를 본 행정조사이지, 실제 대형화재를 견딜 수 있는지를 평가한 것은 아니다. 인천 쿠팡 물류센터는 설비가 작동하고도 방화구획이 무너졌다. 답은 세 가지다. 관리 정상화, 화재하중을 반영한 기준 재설계, 그리고 위험도에 따른 단계적 소급 적용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7월 27일부터 9월 21일까지 소방안전관리 특급 대상 41곳과 연면적 1만5천㎡ 이상 1급 대상 432곳, 모두 473곳의 소방·방화시설 작동 여부와 위험물 저장기준 등을 조사했다고 22일 밝혔다. 인천 화재 나흘 뒤인 7월 22일 추미애 지사가 긴급대책회의에서 지시한 점검이다. 236곳에서 260건의 위법사항이 확인됐다. 지정수량을 넘긴 위험물 보관, 피난통로 물건 적치, 창고 내부 사무실 임의 증축 등이 주요 사례였고, 도는 입건 1건, 과태료 26건, 조치명령 219건, 기관통보 14건의 처분을 내렸다.
이번 조사의 의미는 개별 화재 뒤 해당 시설만 들여다보던 방식에서 벗어나 대형·고위험 물류시설군 전체의 관리 수준을 한꺼번에 확인했다는 데 있다. 다만 결과를 ‘경기도 전체 물류창고의 절반이 위법’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조사 모집단은 도내 모든 창고가 아니라 대형 시설 473곳이다. 정확한 표현은 ‘조사대상 대형 물류창고의 절반’이다.
점검이 보여준 것… 일상 관리는 쉽게 무너지고, 처분의 84%는 아직 ‘명령’일 뿐
이번 점검은 물류창고의 일상적 안전관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줬다. 피난통로 적치는 근로자의 탈출을 방해하고, 사무실 임의 증축은 설계된 피난동선과 방화구획을 훼손한다. 위험물 초과 보관은 설계 때 예상한 화재 규모를 넘어설 가능성을 키운다. 셋 다 새 기술도 법 개정도 필요 없는, 지키기만 하면 되는 항목이다.
주목할 대목은 처분의 84.2%인 219건이 조치명령이라는 점이다. 명령서 발부는 안전이 아니다. 이번 조사의 성과는 몇 건을 적발했는지가 아니라 지적 사항이 실제로 고쳐졌는지, 같은 위반이 되풀이되지 않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도는 점검 결과를 도소방재난본부와 관할 소방서 누리집에 공개하고 개선 여부를 계속 확인하겠다고 밝혔고, 추 지사도 23일 “문제가 바로잡힐 때까지 계속 확인하겠다”고 강조했다. 시설별 시정기한과 완료 여부, 재점검 결과까지 공개돼야 그 약속은 검증된다.
점검이 못 본 것… 설비가 작동해도 구획이 무너진 인천의 교훈
그러나 이번 조사는 현행 법령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한 행정조사다. 개별 창고가 실제 대형화재를 견딜 수 있는지를 평가한 화재안전성능 조사는 아니다. 스프링클러와 방화셔터가 설치돼 있고 점검 당시 정상 작동한다고 해서 실제 화재에서 연소 확대를 막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7월 18일 인천 서해구 쿠팡 32물류센터 화재가 이를 보여줬다. 허석경 인천서부소방서장은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스프링클러와 방화셔터는 작동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인천소방본부는 21일 서면 브리핑에서 “높은 화재 하중과 강한 복사열로 인해 방화셔터가 녹아내리는 등 방화구획이 무력화돼 인근 구역으로의 연소확대 저지에 심각한 난항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허 서장의 말대로 “방화셔터는 불이 완전히 안 타는 것이 아니다. 법적으로 따지면 불을 차열하는 시간이 몇 분이냐에 따라서 등급이 결정된다. 오랜 시간 열을 받으면 그것도 탄다.”
그렇다고 이 화재를 곧바로 방화셔터만의 문제로 규정해서도 안 된다. 셔터의 작동 시점과 시공·관리 상태는 합동감식으로 확인할 사안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방화셔터가 맡은 구획의 크기, 그 안에 쌓인 가연물의 양, 층고와 랙 구조, 스프링클러의 소화 능력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적절하게 설계됐느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유용호 화재안전연구본부장은 이 화재를 “랙크식 고층 적재 구조에서 화재하중이 집중될 경우 기존의 설계기준으로는 화재 대응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규정했다(머니투데이 8월 21일 기고).
세 가지 정책 전환… 관리 정상화, 기준 재설계, 위험도 기반 소급
첫째는 관리 정상화다. 위험물 초과 보관, 피난통로 적치, 임의 증축은 지금 당장 바로잡을 수 있다. 경기도는 219건 조치명령의 시정 완료율과 재점검 결과를 공개하고, 반복 위반이나 허위 시정이 확인된 시설에는 과태료를 넘어 영업정지·사용제한까지 연계해야 한다. 물류창고업 등록 때 내는 화재안전관리계획서에 이행의무와 행정기관의 확인·시정명령을 법률로 명시하는 개정안이 8월 발의된 것도 같은 방향이다.
둘째는 설계기준의 재검토다. 현행 건축기준은 10층 이하 층에 스프링클러 등 자동식 소화설비가 있으면 바닥면적 3,000㎡ 이내마다 방화구획을 하도록 한다. 그러나 물류창고의 실제 위험은 같은 바닥면적이라도 층고, 적재높이, 가연물과 포장재, 랙 구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국내 물류창고를 분석한 화재하중 연구에서도 창고 높이가 높아질수록 단위면적당 화재하중과 등가화재지속시간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물류창고의 방화구획과 소화설비 기준은 바닥면적뿐 아니라 층고, 적재높이, 수용물품의 위험도를 함께 반영해야 한다. 방화셔터도 제품 하나의 내화성능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설치 크기와 복사열, 가이드레일과 상부 구조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 성능으로 검증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연구개발 사업에서 복사열 차단성능을 높인 물류시설용 방화셔터가 현장 실증 단계에 들어간 것은 제도화로 연결할 기술적 기반이다.
셋째는 위험도에 따른 단계적 소급 적용이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3조는 기준이 강화돼도 기존 시설에는 종전 기준을 적용하고 공동구·노유자시설·의료시설 등 일부만 예외로 둔다. 창고시설은 이 예외에 없다. 2023년 준공된 32센터가 2024년 강화 기준(라지드롭형 스프링클러, 랙 높이 3m 이하마다 헤드 추가)을 적용받지 않은 이유이고,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등록 물류창고 5,949곳 중 4,325곳(72.7%)이 강화 기준 시행 전에 등록된 시설이다(서울신문 7월 20일 보도). 기존 시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지만, 모든 창고에 같은 기준과 같은 공사기한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현실적 해법은 아니다.
유용호 본부장은 연면적·층고·가연물 하중·리튬배터리 취급 여부를 지표화해 고위험군부터 소급 적용하고 유예기간과 이행시한을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피난통로와 위험물 관리처럼 즉시 개선할 사항은 바로 시행하고, 스프링클러와 방화구획처럼 대규모 공사가 필요한 시설에는 유예기간과 재정지원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추 지사도 7월 22일 회의에서 “화재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합리적 기준을 마련해 소급 적용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 지원을 확대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발 건수에서 위험 감소로… 정책의 평가기준부터 바꿔야 한다
경기도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연면적 1만5천㎡ 이상 창고시설을 강화된 소방시설기준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 등 소방법령 개정안 15건을 소방청에, 대형 물류창고 내 소방활동 안전공간 설치 등 제도개선안 11건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다(연합뉴스). 소방·건축·전기·안전 분야를 합쳐 26건이다. 추 지사는 “물류창고 화재는 근로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대한 민생 현안인 만큼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제도의 한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향은 타당하다. 다만 정책이 여러 대책의 나열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핵심은 세 가지다. 현행법 위반을 바로잡는 것, 실제 화재하중을 기준에 반영하는 것, 고위험 기존 시설부터 개조하는 것이다. 창고시설이 소방시설법 특례에 추가되더라도 어떤 설비에 어느 범위까지, 어떤 유예기간으로 적용할지는 하위법령이 정한다. 그 설계가 실제 의무를 좌우한다.
473곳 중 236곳이라는 숫자는 관리의 경고다. 인천에서 무력화된 방화구획은 설계기준의 경고다. 경기도 조사를 일회성 단속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정책의 평가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적발 건수가 아니라 시정 완료율, 그리고 고위험 시설의 실질적인 위험 감소다.
## 출처 및 참고자료
· 뉴스1, 「경기 대형 물류창고 2곳 중 1곳 ‘화재안전 위반’…473곳 중 236곳 적발」 (2026.9.22) / 「추미애 “대형 물류창고 화재안전 위반, 바로잡을 때까지 확인”」 (2026.9.23)
· 연합뉴스, 「’쿠팡 인천물류센터 화재’ 계기로 473곳 점검해 입건·과태료 등 260건 조치」 (2026.9.22) / 「인천 쿠팡물류센터 방화구획 무력화…방화셔터 녹아내려」 (2026.7.21)
· 중부일보 (2026.9.23) / 아주경제 (2026.9.23) / 서울신문, 「추미애, “제2의 인천 물류센터 화재 발생하지 않도록 점검 후 도민에 결과 보고” 지시」 (2026.7.23) / 추미애 경기도지사 SNS 게시글 (2026.9.23)
· 이데일리, 「인천 쿠팡센터, 스프링클러·방화셔터 작동했지만 연소 확대 못막아」 (2026.7.20) / 서울신문, 「전국 물류창고 10곳 중 7곳, 강화된 소방 기준서 제외」 (2026.7.20) / 뉴스핌 (2026.7.23)
· 머니투데이, 유용호(한국건설기술연구원) 「[기고] 쿠팡 물류창고 화재의 교훈」 (2026.8.21) / 콜드체인뉴스, 「물류창고 화재안전계획, 이행의무·시정명령 법제화 추진」 (2026.8)
· 「물류시설의 화재하중 및 등가화재지속시간 산출에 관한 연구」(한국화재소방학회) / 국토교통부 물류시설 화재대응·피난유도기술 현장 실증 관련 보도
·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3조 / 「건축법 시행령」 제46조 / 「방화문 및 자동방화셔터의 인정 및 관리기준」(국토교통부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