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 배열 상태의 그라스울로 최고등급 시험성적서를 발급받고, 실제 제조 시에는 강도 확보를 위해 섬유를 수직으로 세워 넣는 조직적 편법이 20년째 묵인되고 있다.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이사장은 국회 토론회에서 그라스울의 ‘불연 안전 신화’가 허구임을 정면 반박했다.
국감서 정식 제기된 ‘시험성적서 편법’… 20년째 묵인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이사장은 5월 13일 국회의원회관 토론회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국정감사에서 정식 제기되었던 그라스울 패널 업계의 조직적 편법 행위를 정면으로 고발했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그라스울(유리솜) 단열재는 섬유질의 배열 구조에 따라 성능이 극명하게 갈린다. 섬유가 수평(횡방향)으로 누워있을 때 공기층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가등급 등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낮은 열전도율) 성적서가 도출된다. 패널 제조사들은 이 수평 배열 상태의 단열재 단품으로 정부 공인 시험성적서를 발급받는다.
그러나 실제 공장에서 건축용 샌드위치 패널로 조립할 때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0.5mm 이하의 얇은 강판 사이에 수평 그라스울을 넣으면 손으로 누르기만 해도 쑥 들어가 강도가 전혀 나오지 않는 구조적 결함이 생긴다. 이 때문에 모든 업체가 수평 그라스울 원단을 칼로 잘라 섬유 배열을 수직(종방향)으로 90도 세워서 패널 내부에 충전시킨다.
이 이사장은 “섬유가 수직으로 세워지면 압축 강도는 증가하지만, 수직 섬유를 타고 열이 그대로 전도되어 단열 성능은 KS 규격 기준상 최소 30% 이상 급격히 저하된다”고 지적했다. “가등급 자재가 다등급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에 유통되는 모든 그라스울 패널은 허위 성적서를 첨부해 준공 허가를 받고 있다”고 성토했다.
300~400℃에서 녹아내리는 ‘불연재’… 소방관 순직의 주범
이 이사장은 그라스울의 ‘불연 안전 신화’ 자체가 허구라고 주장했다. 대중들은 그라스울이 ‘돌’로 만든 불연재라 화재에 무조건 안전하다고 믿지만, 미네랄울과 달리 그라스울은 폐유리 등 규사를 녹여 만든 유리섬유라는 것이다.
그는 “제조사 공식 데이터북에도 300~400℃의 저온에서 유리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고 명시되어 있다”고 밝혔다. 화재 현장 온도가 1,000℃를 상회하는 점을 감안하면, 그라스울은 화재 초기에 다 녹아 액체로 흘러내리며 패널 내부가 텅 비는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0.5mm도 안 되는 극박 철판 두 장만 남아 순식간에 외벽과 지붕이 주저앉는다. 이 이사장은 경북 문경 화재 당시 소방관 순직의 원인이 바로 이 메커니즘이라고 지적했다.
페놀 바인더의 위험성도 도마에 올랐다. 흩날리는 유리솜 섬유를 가공재로 성형하기 위해 혼합하는 ‘페놀계 수지 바인더’는 상온에서도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가스를 지속 방출하며, 화재 시에는 치명적 흑색 유독가스를 뿜어낸다. 이 이사장은 “화재 인명 피해의 90%는 화염이 아닌 가스 질식사”라며 대구 지하철 참사를 환기했다.
소방수 머금으면 자중 최대 20배… ‘실물 화재 시험 면제’ 철폐해야
하중 문제도 심각하다. 이 이사장은 “그라스울은 소방수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되 배출하지 못해, 화재 시 자체 중량이 최대 20배(지붕 전체 하중 약 150톤 증가)까지 폭증한다”고 밝혔다. 이는 화재 진압 중인 소방관들의 압사 사고를 유발하는 주범이 되며, 준공 후에도 수년이 지나면 자체 수분을 흡수해 하부로 처지는 결로 및 결속 불량 하자가 빈발한다.
이 이사장은 정책 대안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현행 법령상 그라스울 패널이 불연재라는 명분으로 면제받고 있는 대형 ‘실물 화재 시험’을 유기질 자재와 동일하게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화염 방사 시 초기에 다 녹아내려 시험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시험 자체를 면제해 주는 기득권 특혜”라고 비판했다.
둘째, 자재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평가하는 생애주기 종합평가(LCA) 시스템을 도입하고, 페놀 바인더를 기준치 이상 사용하는 저급 중국산 패널의 수입을 전면 차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적서 위조가 적발된 자재 업체와 시험 기관은 즉각 시장에서 영구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도 청원했다.
이번 발표는 ‘불연재=절대 안전’이라는 공식이 현장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