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아리셀 참사 사망자 대다수는 화염이 아닌 독성가스 흡입으로 즉사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환경재난 전문가 허윤종 박사는 “한국 소방관들은 유독 물질이 묻은 장비를 소방차에 그대로 싣고 귀소한다”며 건식 제독제 즉각 지급과 해즈맷 SOP 법제화를 촉구했다.

반도체·배터리 화재는 ‘화생방 재난’… 아리셀 참사가 증명했다

허윤종 NCT솔루션 대표(미국 실리콘밸리 환경재난 전문가)는 5월 13일 국회의원회관 토론회에서, 첨단 산업현장 화재의 본질이 ‘불’이 아니라 ‘독성가스’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삼성 반도체 생산 라인이나 리튬 배터리 공장의 화재는 일반 아파트나 상가 화재와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고 선을 그었다. 반도체 크린룸은 에어샤워를 거쳐야 하는 극한의 밀폐 공간이며, 붕소·인화수소 등 치명적 독극물이 흐르는 파이프라인 수천 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리튬 배터리 공장 역시 열폭주 시 상상을 초월하는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허 박사는 2024년 6월 화성 아리셀 공장 참사를 직접 거론하며 “사망자 절대다수가 화염에 타 죽은 것이 아니라, 수초 만에 발생한 독성 가스를 흡입하고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말했다. 소방청 공식 발표에서도 신체 마비로 기동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 사인으로 확인됐다.

불화수소(HF), ‘악마의 가스’… 한 모금이면 폐포 회복 불가

허 박사가 특히 집중적으로 경고한 물질은 불화수소(HF) 가스다. 배터리 열폭주 및 첨단 공정 화재 시 다량 방출되는 이 가스는 극소량만 노출되어도 피부 조직을 녹이고 뼈 속 칼슘까지 침투해 심정지를 유발한다.

허 박사는 “에어로졸 형태로 호흡기에 흡입되면 단 한 모금만으로 기관지와 폐포를 회복 불가능하게 파괴한다”며 “이것이 아리셀 참사에서 대피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한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소방관들이 착용하는 방화복의 방수 코팅제나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PFAS(과불화화합물)의 위험성도 환기했다. 탄소와 불소의 강력한 공유결합으로 지구상에서 영원히 분해되지 않는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로, 체내 축적 시 암·호르몬 교란·간 손상을 유발하지만 한국 소방관들에 대한 정기적 혈액 내 PFAS 모니터링은 전무한 실정이다.

미국은 ‘3자 통합 제독’… 한국은 “대충 물로 씻어내거나 그대로 귀소”

허 박사는 미국과 한국의 독성 화재 대응 체계를 정면 비교했다. 미국 소방은 유독 가스·화학 물질 화재를 ‘해즈맷(HAZMAT)’ 체계로 대응하며, 현장 유독 물질의 ‘즉각적 중화 및 응급 제염(Decontamination)’을 소방 활동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반도체 공장·지역 소방대·거점 병원이 3자 통합 제독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공기 중 오염 물질과 불화수소를 순간적으로 흡착·중화하는 에어로졸 형태의 건식 제독제를 소화기 옆에 상시 배치하며,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 후 소방차에 탑승하기 전 방화복의 독성 물질을 현장에서 완벽히 제독해 밀폐 공간에서의 2차 중독을 차단한다.

한국의 현실은 참담하다. 허 박사는 “한국 소방관들은 방화복과 공기호흡기가 자신을 완벽히 보호해 줄 것이라 믿지만, 불화수소의 고부식성은 호흡기 고무 재질과 방화복 섬유를 뚫고 침투한다”고 경고했다. 예산과 표준 매뉴얼(SOP) 부재로 현장 제독 시스템이 없어, 유독 물질이 묻은 헬멧과 장비를 대충 물로 씻거나 그대로 소방차에 싣고 귀소하는 것이 현실이다.

동탄 신도시 5km 앞 반도체 단지… “독성 화재 시 국가적 대재앙”

허 박사는 도시 계획의 구조적 위험도 경고했다. 과거 기흥 삼성 반도체 단지 주변은 사방이 비어 있었으나, 현재는 불과 5km 이내에 동탄 신도시 등 초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는 “산업단지 내 독성 화재가 발생하면 유독 에어로졸이 바람을 타고 인근 민간 주거 지역을 덮쳐 국가적 대재앙으로 번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허 박사는 소방청·환경부·산업부·국토부가 통합된 독성 환경 재난 SOP를 법제화하고, 소방관들에게 건식 제독제를 즉각 지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산업단지와 민간 주거지역 사이의 완충 거리 기준을 법제화하고, 산업단지 독성 화재 발생 시 인근 주민 대피 프로토콜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발표는 한국의 산업현장 화재 대응이 ‘진압’ 중심에서 ‘독성 환경 재난 대응’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절박한 메시지를 국회에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