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2일부터 본격 시행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건설현장에서 화재위험작업 시 성능인증 방화포 사용이 의무화됐지만, 정작 시장에는 법정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이 거의 없어 건설업계가 큰 혼란에 빠졌다. 소방방재신문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돈을 줘도 살 수 없다”며 법 준수 의지가 있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안전보건공단 기술지침인 ‘KOSHA GUIDE’에 따라 제조된 방화포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2023년 7월 1일 소방청이 건설현장 화재안전기준에 방화포 규정을 정립하면서 성능인증 제품만 사용하도록 법규가 강화됐다. 이후 방화포 규격을 놓고 산업안전보건법과 소방법 중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 논란이 일자, 고용노동부는 소방법에 따른 성능인증품을 사용하도록 기준을 통일했다.

현재 모든 건설현장은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을 통해 성능인증을 받은 방화포를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방화포는 소방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양 법에 따라 건설현장의 필수품이 됐지만, 정작 시장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증 과정에서 40% 불합격률 기록

방화포 공급 부족 문제는 까다로운 인증 과정에서도 기인한다. 소방방재신문에 따르면 KFI 검사 과정에서 방화포 10개 중 4개가 불합격 판정을 받고 있어 물량 부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높은 불합격률로 인해 제조업체들도 생산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설현장에서는 기상천외한 대응책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 현장에서는 “샀다는 증거라도 남겨야 한다”며 구매 이력만 남기는 고육지책을 쓰고 있다. 실제 제품을 구할 수 없으니 최소한 구매 의지라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건설소방협의체는 “현장 특성에 따라 방화포 사용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탁상 행정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고층 건물이나 대규모 건설현장에서는 방화포 없이는 화재위험작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방화셔터 업계에도 파급효과 우려

방화포 공급 부족 사태는 방화셔터 및 관련 방화설비 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방화포를 구할 수 없어 화재위험작업이 지연되면서 방화셔터 설치 공정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용접이나 절단 작업이 필요한 방화셔터 설치 과정에서 방화포는 필수 안전장비로 사용되는데, 이를 구할 수 없어 공사 일정이 전반적으로 지연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방화설비 업계 관계자는 “방화포 품귀 현상이 장기화되면 건설현장 전체의 방화안전 시스템 구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신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부 대형 건설사들은 방화셔터 설치 일정을 조정하거나 대체 공법을 검토하는 등 우회책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대응책 마련 시급

이러한 상황에 대해 소방청은 기준 완화를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점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일시적 병목 현상”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당장 법 위반 위험에 노출돼 있어 즉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에서는 과도기적 조치로 기존 KOSHA GUIDE 기준 제품의 한시적 사용 허용이나, 인증 절차 간소화 등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방화포 제조업체에 대한 지원 확대를 통해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건설업계는 “안전 강화 취지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규제는 오히려 안전을 해칠 수 있다”며 “법 시행 전 충분한 시장 조사와 공급 대책 마련이 선행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출처: 소방방재신문, 고용노동부, 셔터뉴스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