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학생들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학교의 복도가 재난 시 생명의 통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우석대학교 이순범 교수는 5층 규모의 남자 고등학교 건물을 대상으로 Pathfinder 피난시뮬레이션을 수행한 결과, 복도에 설치된 개인 사물함과 음수대, 일체형 자동방화셔터가 피난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규명했다.

복도 폭 좁히는 3대 장애물… 법 위반 소지도

연구 대상 학교는 세로 18m, 가로 126m의 5층 건물로 총 30개 학급 786명이 재실하는 구조다. 복도 폭은 2.5m이지만, 반별로 설치된 사물함(폭 40cm)과 경사로 입구의 음수대(폭 60cm)가 유효 폭을 크게 줄이고 있었다. 건축물 피난·방화구조 기준에 따르면 양쪽 거실이 있는 복도의 유효 폭은 2.4m 이상을 유지해야 하지만, 이 장애물들로 인해 법 위반 소지가 있는 상황이다. 방화구획에 따라 각 층 복도 중앙에는 너비 100cm, 높이 200cm의 출입구가 설치된 일체형 셔터가 배치되어 있었다.

시뮬레이션 결과, ASET 82초 초과

연구팀은 3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했다. 장애물 없이 2~4층에 학생을 배치한 시나리오 1에서 피난소요시간(RSET)은 218.5초로 피난허용시간(ASET) 240초보다 21.5초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사물함·음수대·일체형 셔터를 모두 적용한 시나리오 2에서는 RSET이 322초로 급등해 ASET을 82초나 초과했다. 재난 발생 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수치다. 특히 일체형 셔터만 적용해도 RSET이 320.5초에 달해, 셔터가 피난시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반면 학생들을 1~3층에 배치한 시나리오 3에서는 동일한 장애물 조건에서도 RSET이 214.5초로 측정되어, ASET 대비 25.5초의 여유를 확보했다. 고층에서 저층으로 학생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피난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체형 셔터 철거 또는 가이드라인 시급”

국토교통부는 2022년부터 일체형 셔터의 신규 설치를 금지했지만, 기존 설치분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연구팀은 “화재가 발생하고 연기가 찬 상태에서 보행 장애물로 피난로가 막혀있다면, 그 사실만으로 이미 인재(人災)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음수대의 복도 외부 이전, 사물함 전용 공간 확보, 기존 일체형 셔터의 활용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

논문 출처 | 이순범 (2023). 고등학교 복도 보행 장애물이 피난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 한국안전학회지, 38(2), 112-119. https://doi.org/10.14346/JKOSOS.2023.38.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