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화재 원인 규명에 인공지능(AI) 기술이 본격 도입되고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휴대용 현미경으로 촬영한 구리 시편 이미지를 AI로 분석해 전기화재 관련 용융흔(溶融痕)을 약 10초 만에 판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에 숙련된 전문가가 수행하던 육안 분석 작업을 AI가 대체하는 방식으로, 현장 조사의 속도와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용융흔이란 전기 단락이나 과부하 등 전기적 원인으로 인해 구리 도체가 녹아 형성된 흔적으로, 화재 원인이 전기적 요인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증거다. 그동안 용융흔 판별은 전문 감식관의 경험과 숙련도에 크게 의존해 왔으며, 분석 시간과 인력 부담이 상당했다.

AI 분석 기술의 성과와 한계

전기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전기안전공사가 개발한 AI 기반 용융흔 판별 기술의 정확도는 약 95% 수준으로 제시됐다. 분석 소요 시간은 약 10초로, 기존 방식 대비 현장 대응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평가다. 공사는 이 기술 외에도 에너지저장장치(ESS)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열폭주 위험 355건을 사전에 예방하고, 약 4037억 원의 손실을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보도에 따르면, AI 분석 결과의 신뢰성, 최종 판단과 책임의 주체, 기존 검사체계와의 연계 방식, 현장 인력의 역할 재정립 등에 대한 추가 논의와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AI가 95%의 정확도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나머지 5%의 오판 가능성은 화재 원인 감식이라는 법적·행정적 절차에서 중대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화재 원인 판정은 보험 처리, 형사 책임, 행정 처분 등과 직결되는 만큼, AI 결과를 최종 판단 근거로 삼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방화·소방 업계에 미치는 영향

AI 기반 전기화재 원인 분석 기술의 발전은 방화셔터·방화문 등 소방안전 설비 업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기화재 원인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규명될수록, 화재 발생 경로와 확산 패턴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는 방화 설비의 설치 기준 및 성능 기준 개정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ESS 설치 공간이나 전기실 인접 구역에서의 방화구획 강화, 방화셔터 작동 연계 기준 정비 등이 중장기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 또한 AI 감식 기술이 제도화될 경우, 화재 후 원인 조사 과정에서 방화 설비의 작동 여부와 성능이 더욱 정밀하게 검증되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이러한 기술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제품 성능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관련 기준 개정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AI 기술이 전기화재 감식 분야에 빠르게 접목되고 있는 만큼, 기술의 현장 적용 가능성과 제도적 수용 범위를 함께 논의하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요구된다.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이번 기술 개발은 그 출발점으로서 의미가 있으나, 실효성 있는 제도화를 위해서는 관계 부처, 학계, 현장 전문가가 참여하는 검증 체계 구축이 뒤따라야 한다.

출처: 전기신문, 셔터뉴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