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대공간의 딜레마… “방화문 놓을 자리가 없다”
대형 쇼핑몰과 복합환승센터, 공항 터미널처럼 탁 트인 개방형 공간이 늘어나면서 방화구획 설계자들은 오래된 딜레마와 마주해 왔다. 현행 규칙 제14조제2항제4호가목은 화재 시 재실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동방화셔터 단독 설치를 금지하고, 셔터로부터 3미터 이내에 피난이 가능한 60분+ 방화문 또는 60분 방화문을 반드시 별도로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 ‘3미터 이내’라는 요건이 모든 현장에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는 공고 제2026-928호 입법예고문에서 “건축물 구조상 방화문을 설치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개정 이유를 명시했다. 기둥과 벽체 배치, 개구부 폭, 동선 계획 등 물리적 제약으로 셔터 인근에 방화문 자리를 확보하지 못해 설계 자체가 막히는 현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방감을 극대화하는 최근 건축 트렌드일수록 셔터 주변에 방화문을 붙일 벽체가 없는 역설적 상황이 빈번했다.
제14조에 단서 신설… ‘복합 방화셔터’, 규칙 조문에 법정 용어로 첫 등장
개정안은 해당 조항에 “다만, 피난을 위한 방화문을 갖춘 자동방화셔터(이하 ‘복합 방화셔터’라 한다)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아니하다”는 단서를 신설했다. 셔터 커튼 자체에 피난용 방화문이 내장된 복합 방화셔터라면, 3미터 이내 별도 방화문을 중복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복합 방화셔터’라는 용어가 국토교통부령 조문에 법정 용어로 등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치는 지난 2월 「건축자재등 품질인정 및 관리 세부운영지침」 개정으로 복합 방화셔터의 품질인정 기준이 신설된 데 따른 후속 입법이다. 당시 지침 개정으로 제품을 만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정작 설치 의무를 규정한 상위 규칙에는 근거가 없어 ‘제품은 있는데 규제 완화 효과는 없는’ 어정쩡한 5개월이 이어져 왔다. 설계사무소 입장에서는 복합 방화셔터를 적용해도 방화문 설치 의무가 그대로 남아 있으니 굳이 채택할 유인이 없었던 셈이다. 이번 규칙 개정으로 지침과 규칙, 제품 기준과 설치 기준이 비로소 하나의 제도로 맞물리게 됐다.
이례적인 부칙 제2조… 이미 허가 신청한 현장도 설계 변경 가능
실무자들이 특히 주목할 대목은 부칙 제2조다. 개정 규정을 규칙 시행 전에 건축허가(변경허가 포함) 신청, 건축위원회 심의 신청, 건축신고, 용도변경 허가 신청을 한 경우에도 적용하도록 소급 조항을 명시했다. 다른 법률에 따라 건축허가·신고가 의제되는 인허가 신청분까지 포괄한다.
통상 건축 법령 개정은 ‘시행 후 최초로 신청하는 분부터’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미 진행 중인 인허가 절차에 개정 규정을 소급 적용하는 것은 규제를 강화할 때는 위헌 소지가 있어 불가능하고, 완화할 때도 형평성 논란 탓에 잘 쓰이지 않는 카드다. 국토부가 이 카드를 꺼냈다는 것은 방화문 중복 설치 문제로 설계가 막혀 있는 현장의 애로가 그만큼 구체적으로 접수됐다는 방증이다. 현재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인 대공간 프로젝트라면, 규칙 공포 즉시 복합 방화셔터로의 설계 변경을 검토할 수 있게 된다. 시행일도 별도 유예 없이 ‘공포한 날부터’로 못 박았다.
정승수 국토부 건축안전과장은 “이번 개정안은 산업 현장의 변화와 신기술을 건축제도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면서도 건축물 화재안전은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한 것”이라고 밝혔다.
셔터가 문이 되는 시대… 복합 방화셔터, ‘틈새 제품’에서 ‘규제 해법’으로
이번 개정으로 복합 방화셔터의 시장 위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2월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제품 카테고리가, 이제는 ‘설치하면 방화문 하나를 통째로 줄여주는’ 규제 해법으로 격상됐다. 발주처 입장에서 방화문 중복 설치 면제는 공사비 절감과 공간 활용이라는 실익으로 직결되고, 설계자 입장에서는 방화문 자리를 못 찾아 헤매던 대공간 방화구획의 돌파구가 된다. 소급 적용 부칙까지 감안하면 수요 개화 시점은 통상적인 법령 개정보다 훨씬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관건은 공급 능력이다. 셔터 커튼에 피난문을 내장하는 복합 방화셔터는 차연·차염 성능과 개폐 내구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고난도 제품으로, 품질인정을 확보한 업체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규제 완화가 만든 시장을 누가 선점하느냐는 결국 인정 취득 속도에서 갈릴 것이다. 입법예고 기간은 8월 24일까지다. 단서 조항의 해석 범위, ‘피난을 위한 방화문’의 세부 요건 등 실무 쟁점에 대해 업계가 지금 목소리를 내야 시행 이후의 혼선을 줄일 수 있다.
출처: 국토교통부 (2026. 7. 15.).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 (국토교통부 공고 제2026-928호). 세종: 국토교통부 건축안전과. 의견제출: 통합입법예고센터(opinion.lawmaking.go.kr), 2026. 8. 24. 마감.